오늘도 어김없이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가 아래의 차가운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이 달빛마저 없다면 저는 정말 어떻게 살아갔을까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고 차가운 벽의 냉기만이 내 몸을 싸늘하게 식혀가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나아가네요. 생각이 깊어지는 새벽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음미하는 것은 나쁘지 않...
매캐한 담배연기가 콧구멍을 찔러왔다. 모르트는 인상을 구기며 손으로 코를 가렸다. 항상 어쩔 수 없이 들르는 뒷골목이었지만 매번 들를 때마다 인상이 구겨졌다. 골목 하늘에는 순찰 드론들이 소리 없이 빛을 번쩍이며 날아다녔다. 무언가 잘못 한 것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찔려 쓰고 있던 모자를 깊숙하게 눌러썼다. 골목 깊숙한 곳 중에서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난 하염없이 작은 방에 갇혀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 보여. 나는 나무에 매달린 마지막 잎사귀처럼 죽고 싶지만 살고 싶다는 두 생각이 공존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세상에서 웃으며 행복해 하고 있는데 그 행복들은 내 것이 아닌 거 같아 또 슬퍼져. 슬픈 감정이 너무 싫어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억누르며 나는...
거대한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셀리나의 외삼촌인 오드리비아 남작이었다. 오드리비아는 자신의 사용인들과 함께 셀리나의 저택에 들어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곳저곳을 째려봤다. 그의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는 금방이라도 옷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고 그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벨트가 온 힘을 다 해 그의 배를 잡고 있었다. 오드리비아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자신의 ...
끝난 일을 붙잡고 미련하게 후회를 남기며 다시 되돌릴 수 있진 않을까하며 놓지 못한 적이 있었다. 내가 더 잘했으면, 내가 더 참았다면, 내가 더 기다렸다면, 내가 더 포기했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가끔은, 정말 가끔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해도 후회가 남더라. 아니, 가끔이 아니라 항상 후회하게 되더라. 내가 그 땐 왜 그랬을까.
꽤 쌀쌀해진 1월의 낮이었다. 찬바람에 입에선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나름 차려입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약속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직원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고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둘러보다 구석 테이블에 앉은 한서가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한서가 부르는 목소리에 난 테이블로 다가가 맞은편에 앉았다. 테...
내게 헛된 희망과 꿈을 심어주지 마. 난 무엇을 선택하든지 결말은 항상 후회와 슬픔뿐 이었으니까. 내게 좋은 날이 올 거라는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지 말아줘. 나에게 좋은 날이란 불행한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조차 이루어진 적이 없으니까. 너의 이미지를 챙기려고 나를 가엾게 여기지 마. 나를 애써 챙기는 척 하지 마. 너의 거짓된 표정으로 내민 손...
커피를 마시며 너를 떠올렸던 적이 있다. 너는 항상 나와 만나면 카페에 앉아 향긋한 커피를 마셨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커피에 관련된 이야기도 했던 거 같다. 너는 커피와 내가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커피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향으로 한 번 즐기고 커피의 씁쓸한 맛이 자신을 깨워주는 거 같다며. 우린 웃으며 그게 뭐냐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주제를 알아라.” 라는 말이 있다. “수준에 맞게 행동해.” 라는 말도 있다. 항상 무언가를 하려면 저 말들이 내 발목을 붙잡더라. 내 주제에 이런 것들을 해도 되는 걸까? 고작 나 따위가? 아무리 주변 시선을 신경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느껴지는 시선, 들려오는 작은 비난의 소리들. 분명 저들은 내가 고통을 받으면 즐겁다며 웃고 떠들겠지. 내가 무시하면 그...
몸을 움직이는 톱니바퀴를 돌리기 위해 난 끊임없이 태엽을 감았다. 때로는 그 태엽이 너무 강하게 감겨 필요 이상으로 세차게 돌아가기도 했다. 내 안의 톱니바퀴들은 톱니의 톱니끼리 맞물려 계속해서 돌아갔다. 내 몸 안을 가득채운 톱니바퀴들이 돌아가다 보면 공간이 생길 때가 있다. 분명 몸에 딱 맞춰서 톱니바퀴를 끼웠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공간이 남는 걸까? ...
그저 너 하나 떠나간 것뿐인데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이 무너져 내리는 감정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까. 너와 하루를 시작하고, 같이 이야기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잤던 방 안에 그저 너 하나 없는 것뿐인데. 좁디좁은 방이었는데 한 명이 없다고 이렇게 넓어 보일 수 있나. 이 넓은 방을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채워도 한 없이 부족한데, 너는 어떻게...
소복하다 그 소녀를 만난 것은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에 매화나무의 분홍 꽃잎이 떨어질 무렵이었다. 운이 나쁘게 사냥꾼이 놓아둔 덫에 다리가 걸려버렸다. 내 다리를 붙들고 있는 쇠붙이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입을 꽉 다문 채 내 살들을 짓이겨내어 붉은 피가 새어나왔다. 하얀 털로 뒤덮여있던 내 다리는 금세 붉게 물들어갔다. ‘이렇게 또 생을 마감하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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