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노트

잠이 옅게 들었던 탓일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눈을 네가 깨지 않게 고개를 살짝 돌려 창문을 바라보니 어느새 창문에는 송골송골 맺혔고 하얀색 습기가 맺어있었다. 혹시라도 추울까 내 품에 잠든 너에게 이불을 제대로 덮여주고 조심히 침대에서 빠져나와 눈을 비볐다. 비가 내리니 집안이 조금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냉기가 내 살갗을 스쳐지나가...

소복하다 그 소녀를 만난 것은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에 매화나무의 분홍 꽃잎이 떨어질 무렵이었다. 운이 나쁘게 사냥꾼이 놓아둔 덫에 다리가 걸려버렸다. 내 다리를 붙들고 있는 쇠붙이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입을 꽉 다문 채 내 살들을 짓이겨내어 붉은 피가 새어나왔다. 하얀 털로 뒤덮여있던 내 다리는 금세 붉게 물들어갔다. ‘이렇게 또 생을 마감하는구나.’ ...

오늘따라 유독 버스에 사람이 붐볐다. 가득 찬 만원 버스를 몇 대를 보냈는지 셀 수 없었다. 결국 불편을 감수하고 다음 버스에 몸을 우겨넣어 탑승했다. 더 이상 버스를 보냈다간 약속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거 같았기에. “늦지 않아야 할 텐데...” 만원 버스는 숨이 턱 막힐 지경으로 후끈했다. 기사는 덥지도 않은지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줬고 두꺼운 옷을 입은...

비가 온 뒤라 땅은 질퍽 소리를 내며 질척거렸고 숲길은 횃불이 없다면 눈을 감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어두웠다. 입에선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쉬지 않고 에뤼느를 찾으러 달려갔다. 울창한 숲을 지나 넓은 들판에 도착하니 에뤼느는 등을 돌린 채 달을 바라보며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 있었다. “후... 얼마나 찾은 줄 아세요? 빨리 돌아가요.” 내 ...

“발을 더 내밀어! 자세를 견고하게 굳혀라!” 검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훈련장에서 울려 퍼졌다. 에뤼느 단장의 검이 내 검과 강하게 부딪히자 손이 저려왔다. 자칫 잘못하면 검을 놓칠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난 곧바로 검을 굳게 잡으며 단장의 검을 받아쳤다. “빈틈을 보이지 마라! 끈임 없이 받아쳐!” “네!” 에뤼느는 쉼 없이 나에게 검을 휘둘렀고...

문 너머에서 키보드 타자 소리가 어렴풋이 흘러나왔다. 이벨은 자신의 총을 등에 메고 연구실 표지판이 붙어있는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할까 망설이다 두 번 문을 두드렸다. 방 안에선 게일의 “네.”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벨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게일은 자신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머리끈으로 묶고 의자를 돌려 이벨을 향했다. 모니터를 보아하니 ...

“오늘부터 자네가 면담 담당인가?” 하얀 머리의 연구원이 나에게 물어왔다. 그는 마치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검은 유리창을 한번 바라보았다. 저 유리창 너머에는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생물체, 아니 생물이 아닐지도 모르는 존재가 갇혀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저 방을 나오지 못했다고 들려왔다. 이름은...

가을 하루 창문 너머에서 흘러들어오는 차가운 기운과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빗소리에 자연스레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볐다. 창문 밖은 우중충한 회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옆을 바라보니 너는 속옷 차림으로 이불 속에서 빗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잠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피식 웃으며 나는 그녀의 다리까지 이불을 제대로 덮어...